제가 서른아홉에 낳은 큰아이는 자폐성 장애로 현재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남들과는 조금 다른 독립이 아닌 자립을 준비하는 고2 학생입니다. 자폐는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제 입장의 글을 올립니다.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
평소에는 "저희 아이가 좀 아파서요.." 이런 말을 가끔 사용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소개할 상황이 되면 우리 아이를 "자폐아'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가두는 게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가두어지는 것을 왜 그런 표현을 쓸까요?
제 아이는요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자폐아나 다른 장애인에 관한 소식(주로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면서 저는 늘 맥 빠지는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잘 키워야 하고 나 자신은 늙지 말고 병도 들지 않아야 한다는 조금은 황당한 다짐은 하곤 합니다. 아이는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는 일반 중학교에서 힘든 3년의 생활을 했고, 지금은 특수학교에서 나름 열심히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제 아이는
특수학교의 고등부 2학년인 아이는 일 년 반 후에 고등부를 졸업하고, 다음은 전공과(특수학교에 있는 대학과정)에 들어갈 예정이고, 그 전공과를 졸업하면 아마 다른 사람들처럼 직업전선에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엔 아이가 아직 어리고 야무지지도 못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잣대는 우리 아이를 그냥 청년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느리게 자라고 있는 아이를 조금은 무리하게 세상으로 내보내고 있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찻길을 혼자 건넜어요
우리 아이는 현재의 제도로 말하자면 중증 장애인입니다. 열여덟이 되어서 처음으로 혼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심부름을 해온 아이는 자신도 흥분되고, 전 오랜 숙원을 이룬 거라서 기쁘다기보다는 벅차고 감사했습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을 계속 되뇌며, 이젠 또 다른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설레는 기분을 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저도 큰아이는 아픈 아이지만, 둘째는 비장애 아이입니다. 그래서 비장애 아이만 키우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전혀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섭섭한 것이 더 크죠. 각박한 세상이라 내 자식 하나도 제대로 키우기 힘든데, 다른 집 아이까지 신경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압니다. 특수학교 하나 만들겠다고 태어나서 한 번도 꿇어보지 않은 부모들이 비장애 부모들 앞에서 죄인처럼 무릎 꿇고 애원하던 그 모습은 평생의 트라우마입니다. 집값 운운하면서 안된다던 그분들은 지금 잘 지내시나요?
저는 투사도 아니지만 방관자도 아닙니다
저는 학생데모가 한창이던 80년대에 청춘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저는 너무 비겁했고 부족했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는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웹툰작가 주호민 씨의 기사를 보면서 달린 댓글들을 그냥 편하게 읽어 내려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전 지켜야 하는 아픈 아이가 있으니까요. 저도 두 아이 모두 비장애아였다면 지금과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큰 뿌리는 같았을 겁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함께 살아야 하지 않나요? 나와 다른 모습이니까, 다른 행동을 하니까 우리 쪽으로는 오지 마,라는 식은 너무 이기적이다 못해 무섭지 않나요? 우리 아이가 지금의 저 모습을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우리 아이도 다른 모든 아픈 아이들도 선택이 아닌 많은 면에서 억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 인생 목표는요
전 아이를 잘 키웠습니다. 예의를 가르치고, 규칙을 지키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게 하는 것에 18년의 세월을 투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아이는 자폐아답지 않게 감성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읽을 줄 아는 보기 드문 아이입니다. 열여덟 살이 되어 처음 찻길을 건넜지만, 제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가르쳐서 오롯이 혼자 생활하는 독립은 안되더라도 누군가(대부분은 활동지원사나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가는 자립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 인생 목표입니다. 그걸 이루도록 죽을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고, 제 아이도 제 목표에 다가가도록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저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장애인들이 다른 비장애인들에게 감당 못할 큰 죄를 지은 기사를 볼 때면 마음이 늘 복잡했습니다. 몰라서 저지른 죄를 편들자니, 억울한 일을 당한 쪽이 마음에 걸리고...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아무래도 장애인의 상황을 이해하는 면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도 비장애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불만(학교에 아픈 아이가 돌발행동을 해서)을 제게 얘기하면 "조금만 이해해. 형처럼 아픈 아이니까. 몰라서 그런 거야, 고의가 아니잖아." 이 말을 해줍니다. 아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이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고의가 아니더라도 잘못을 한 아이를 둔 부모는 늘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딱 부러지게 답이 없는 일입니다. 풍선처럼 어느 한쪽을 누르면 한쪽이 반드시 터집니다. 그 풍선을 터지지 않게 조금만 힘을 빼주시면 어떨까요?
제가 큰아이가 잘 때, 가끔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다음 생에는 그냥 평범하게 태어나. 그렇게 한 번 살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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