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다되어 얻은 내 아들은 작고 마르고 그리고 한마디로 똘망. 2005년 12월 26일에 나온 동기 아가들 중 제일 똘똘하게 생긴 아기가 내 새끼였습니다. 진통시간도 길지 않았고 첫 아이치고는 수월하게 나와준 내 아이. 세상이 이렇게 팍팍할 줄 알았다면 너도 뱃속에서 하루라도 더 있었겠지?
첫 아이를 낳고서 난
평소 비혼주의자였고, 특히 아이를 낳을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제가 애들 아빠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사람이 맘먹은 대로만 살아지는 건 아닌 게 맞나 봅니다. 늦은 나이의 임신과 출산이어서 걱정도 조금 되었지만 출산 날까지 잘 자고 잘 노는 아기가 기특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삼사일 때쯤 뒤, 무자식으로 살겠다던 제가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첫째의 외로워 보이는 뒤통수를 보고...
순하고 얌전한 아이
첫 아이는 커가면서 크게 떼를 쓰거나 종일 울어서 저를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잘 웃거나 옹알이를 안 하는 편이어서 어른들께 여쭈어보니, 저 닮아서 그런 거라고들 하셨습니다. 제가 늦게 걷고 아주 늦게 말을 했다고요. 그래서 아이가 말도 늦고 17개월이 되어서야 걷고, 불러도 별 반응이 없어서 그냥 조용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디게 크는 아이는 흔하니까요. 제가 집안 일 할 때면 주니버에서 동요를 들려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뚫어지게 보며 듣는 모습이 "우리 아이는 천재가 분명해. 저렇게 집중을 잘하다니..."
남들과 다른 모습이 점점 보여요
아이는 큰소리로 울지 않았습니다. 예방접종을 해도 그저 잉~ 하고 잠깐 울 뿐, 방긋방긋 웃거나 옹알이를 종일 하지도 않았고, 걷는 모습도 조금은 어설픈 모습이었습니다. 낯가림이 심해서 모르는 분이 집에 오시면 그분이 가실 때까지 울어서 오히려 아이의 머리가 비상한 거라고도 생각했었습니다. 방에 깔려있는 매트를 손가락으로 하염없이 긁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면 이상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님도 병환 중이셔서 아이에게만 신경을 집중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 계속 늦은 아이라고만 여겼는데,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조심스레 "어머니, 아이를 병원에 한 번 데려가 보셔야겠어요."라고 말씀하셔서 그제야 우리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많이 다르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네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시도했지만, 아이는 선생님과 전혀 소통을 하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낯가림이 아주 심했던 탓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검사결과는 참담하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아이 저런 아이가 있는데, 내 새끼가 자폐라니... 더스틴 호프만, 그 배우의 이름을 되뇌며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날이 새도록 검색에 검색을 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을 때쯤 저는 우리 아이가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소아정신과에서 들은 말은 "크게 기대하지 마세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겁니다. 아이의 아이큐가 40입니다." 저는 거짓말 같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혼자설 수 있도록 만들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속으로 수백 번 되뇌며 아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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