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후 며칠이 지나도록 아이의 상태를 관찰만 하고, 약 처방이 나오지 않아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그렇게 고대하던 약을 아이에게 먹이고 나니, 신기하게도 경기가 멈췄습니다.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맥없이 넘어가거나, 커다란 발작을 하던 아이는 그 무서운 경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평온함을 다시 찾게 된 때입니다.(약을 먹어서 발작증상이 없는 경우는 70% 정도라고 합니다. 나머지 30%는 약을 복용해도 여전히 경기를 한다는...)
뇌전증을 공부하는 엄마
학교 다닐 때도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제가 자식일이고 보니, 저절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병에 대해 검색을 하고, 병원에서 여는 세미나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건강세미나나 일반학회세미나와는 달리 가라앉은 무겁고 슬픈 분위기... 그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 그건 아마 사랑일 것입니다.
아이를 매일 매 순간 관찰해요
갑자기 시작된 경기로 종일 아이를 관찰하고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폐증상이 있는 아이라서 주의를 기울이며 키우고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자는 시간에도 종종 일어나 아이의 자는 모습이나 옷에 실수하지 않았는지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매일이 살얼음판이었죠. 잠시 보내는 어린이집도, 같이 가는 마트도 그 어디도 맘 편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 쓴 약을 하루 두 번 꼬박꼬박 먹어요
겨우 여섯 살의 아이가 낮에 뛰어놀고 밤에 잠잘 때면, 곤히 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주 미세한 미동에도 일어나 아이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고... 신생아 때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처방받은 약은 두 가지이고 하루 두 번 먹입니다. 어쩌다 맛보게 된 약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썼습니다. 그 어린아이에게 주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쓴 약이었어요.
병원을 놀이터 삼아
처음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진료도 받고 뇌파검사도 했습니다. 뇌파검사 바로 전에는 머리를 짧게 잘라주었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었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짧게 자른 머리가 이쁘면서도 참 슬펐습니다. 저희는 지방에 살다 보니 서울 종합병원은 아이에게는 커다란 놀이터나 다름없었습니다. 평소 드라이브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검진이 있는 날이면 아이는 해맑게 하루 놀러 가는 기분으로 병원에 가곤 했습니다.
뭘 하지 말아야 할까요?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제가 늘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뭘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때 돌아온 대답은 크게 조심할 건 없고,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고 잘 먹고 잘자면 돼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협진했던 정신과 선생님은 "단 음식 먹이지 마세요. 초콜릿이나 사탕, 젤리 모두요. 더 흥분합니다." 평소에 다른 아이들처럼 초콜릿도 주고 젤리도 사주었는데, 이제는 조심해야 하는 음식이 되었던 거예요. 겨우 여섯 살의 아이에겐 쓰디쓴 약을 먹는 것보다 단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일이 백 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퇴원 후도 여전히 긴장 속에서
퇴원 후 집에 돌아와서도 늘 긴장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쩌다 밖에서 들리는 큰소리도, 어린이 집에서 가는 영화관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조심... (아이는 큰 소리를 무서워했고, 낯선 환경을 두려워했어요.) 처음 뵙는 선생님께는 늘 똑같은 설명을 해드리고, 어떤 환경도 아이에게 긴장감이나 무서움을 주지 않기 위해 애쎴습니다. 많이 안아주고 많이 사랑해 주면 이 병 또한 좋아지지 않을까 해서 그전보다 더 스킨십도 많이 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거의 들어주었습니다. 그 어떤 약보다 사랑이 더 좋을 테니까요.
약을 먹인 후부터 거의 잦아든 경기로 감사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간혹 이불에 실수를 하거나, 잘 때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고, 가끔은 미세하게 몸을 떨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바로 알려드리고 또다시 긴장의 시간을 보낸 것이 어언 13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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