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큰아이는 뇌전증을 앓고 있습니다. 6살에 발병했으니 벌써 햇수로 13년째이네요. 긴 세월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는 쓰디쓴 신경과약을 먹이며 당연한 듯 무심히 건네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안쓰럽고 속상하고 미안합니다.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라서 그 안타까움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왜 뇌전증까지
저의 큰아들은 네 살에 자폐판정을 받고, 다섯 살부터 언어치료와 미술심리 치료를 받으며, 또래와는 좀 많이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자폐는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서 저희 아이도 인지치료도 하고 감각통합이라는 생소한 치료도 받던 중, 어느 날 아이가 나무가 쓰러지듯 일자로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에 아무 말도 못 하고, 허약해서 그런가 싶어 한의원에서 보약을 지어 먹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자주 쓰러져요
보통은 사람이 쓰러진다고 하면 심하게 놀라거나, 물리적으로 다치지 않고는 흔치 않은 일이라서 어린아이가 나무장작처럼 뻣뻣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어떤 날은 맥없이 스르르 주저앉을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막대기처럼 일자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큰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와 뇌파 검사를 받았는데, "간질파가 보이지는 않는데, 증상이 간질이기 때문에 약 처방을 할게요." 라며 뇌전증 약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간질이란 오래된 용어는 이제는 쓰지 않습니다.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 탓도 있겠지요.)
헬맷을 쓴 아이는 해맑게 웃고
너무 자주 쓰러져서 일단 머리를 보호하려 헬맷을 사서 씌워주었습니다. 아직 자전거도 못 타는 아이에게 그걸 씌워주면서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요... 그러고도 여러 날 맥없이 쓰러지던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서울 종합병원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도 얼마나 쓰러졌는지 모릅니다. 현재 먹는 약이 효과가 전혀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 어린 둘째 녀석은 마치 어른처럼 형아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응급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병원 응급실에서는 아무도 제게 집중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경기를 너무 많이 해서 왔다고 안절부절못해도 기다리라는 말만 계속... 그러는 와중에 대발작을 하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며, 둘째는 형아가 왜 그러냐며 엉엉 울면서 소리치고, 저도... 드디어 온 의사 선생님은 아주 차분하게 그간 있었던 일과 이제부터 할 일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 잠시라도 눈을 마주쳐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어쩜 그리도 냉정하기를 바라는지...
응급실을 통해 입원실로 가서도 아이는 계속 넘어가고, 경기를 하고, 더 심한 발작을 하는 모습에 울다가, 경기가 멈추면 또 방긋 웃는 아이를 보니 따라 웃고... 어느 간호사선생님이 종이 한 장 을 주더니 거기에 발작 시간(1분 이상인지, 이하인지)과 발작할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쓰라고 하더군요. 정확한 처방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참 그렇다, 경기하는 자식을 보며 시간을 재고, 침을 흘리는지, 눈이 돌아가서 흰자만 보이는지, 소변을 눴는지, 몸을 어떻게 뒤틀었는지 상세하게 쓰라는 건 좀 그랬습니다. 사전에 이러이러하니 힘드시겠지만 아이의 상태를 기록해달라고 언질이라고 줬다면 덜 섭섭했을 텐데...
잘 지내던 아이가 어느 날, 이유도 없이 경기를 하기 시작하면 어느 부모건 하늘이 무너집니다. 뇌전증일 것이란 상상은 감히 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어서, 그냥 약한 아이라서 잠시 그런 것 일 거라는 희망회로를 돌리기만 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아이에게 "혹시 아팠니?"라고 물으니, "아프진 않은데, 슬퍼요." 발달이 늦어 언어표현이 서툴던 아이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평소 이성적이던 제가 또 한 번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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