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술을 한 지 만 11년이 되었고, 목에 나있던 커다란 흉터는 세월 따라 옅어져서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고, 한 번도 두르지 않았던 머플러를 가끔 선물 받을 때에나 "내가, 그래... 암환자였지..." 합니다. 한동안은 2 차암이라든지 전이라든지 그런 단어에 꽂혀 지내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눈썰미 있는 분이 묻기 전에는 저는 그냥 고등학생 아들을 둔 K-엄마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날 사랑하며
갑상선을 잃기 전에는 내 목안에 그런 작고 소중한 존재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기차가 달리는데 엔진이 없는 것 같은, 무심하기 쉽지만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하는 나비모양의 호르몬 주머니. 지금은 약이 그 기능을 대신하지만, 난 매일의 일상을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습니다.
자각증상도 외형의 변화도 없었습니다
엄마도 또 다른 분들도 목 가운데에 혹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술 전날까지도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없어서 더욱 저의 병을 몰랐었죠. 피곤한 것이야 사내아이 둘을 키우니 당연한 것이라 여겼고, 감정기복이 심한 것도 갱년기로 접어든 것이라 스스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체중이 갑자기 는 것도 아니고 해서, 제 몸 안에 암이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하기 어려웠습니다.
건강검진 때 반드시 갑상선 초음파도 함께하시길
제가 살아서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무심히 했던 갑상선 초음파 검사 덕분일 것입니다. 병을 키우는 성격이었던 저였기에 그대로 모르고 지냈다면 전 어쩌면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살고 있던가, 아니면...
여러분들도 (여성, 남성 모두 해당됩니다) 2~3년에 한 번씩은 꼭 갑상선 검사를 받으시길 추천드립니다. 괜찮으면 감사한 일이고, 조기발견했다면 불행 중 다행이니까요.
수술 후의 나란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살라는 상담선생님의 말씀은, 돌려 생각하니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ISTJ'인 저는 폐 끼치는 것도 싫고, 웬만한 것은 혼자서 알아서 해결하는 편이라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의무가 나 자신보다 항상 우선이었습니다. 그 마인드를 바꾼다고 해서 엄마가 아닌 것도 아내가 아닌 것도 아닌데 말이죠. 마음을 바꾸니 신기하게도 세상이 달라져있었습니다. 시집온 후에 사라졌던 나. 내가 돌아왔습니다.
갑상선이란 나비는 나를 바로 서게 했습니다
제 나이가 되면 아이들도 다 키우고 슬슬 여행 다니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약간의 후회와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며 스스로 위로를 할 때일 텐데, 전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두 아들 녀석을 키우느라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이 듭니다. 입시생 뒷바라지를 하며 그래도 지치지 않는 건 엄마이고 보호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아들이 홀로 자립하는 날까지 전 아이들 뒤에서 커다란 날개로 시원한 그늘도 되어주고 바람도 막아주는 괜찮은 엄마일 것입니다.
제 글이 갑상선 항진증이나 저하증으로 힘드신 분들이나 수술을 앞두고 계신 분들께 작은 보탬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건강은 잃고 나서 소중함을 알게 되고, 사람도 떠나고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죠. 건강은 별게 아닌 것 같아요. 기쁘게 먹고, 좋은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그리고 부모님도 자식도 배우자도 모두모두 사랑한다면 저희 외할머님처럼 좋아하시던 커피 한 잔 드시고, 고맙단 말을 남기며 진짜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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