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가라앉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에 여든일곱의 힘겨운 생을 살아오신 아빠께서 지난 토요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허둥지둥 상조회사에 연락을 하고 정신없이 옷 몇 가지를 챙긴 후 가까운 친지분들께 전화를 드리면서 장례식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슬픔을 표현하기도 전에 장례식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절차들을 밟다 보면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게 됩니다.
생과사는 같은 것
팔십 년이 넘는 해동안 우여곡절을 모두 겪으신 아빠는 앙상한 모습으로 이번 생을 마치셨습니다. 여덟 형제의 맏이로 태어나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시고 부모님과 아내, 자식들까지 책임져야 할 사람은 늘고 가장의 부담은 어깨를 짓누르셨을 아빠는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뒤로하며 자연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조문객으로 오신 친척분과 손잡고 들어온 예닐곱의 아이는 저희 아빠와 같은 시공간을 스쳐지남을 느꼈습니다.
엷은 미소를 띤 아빠
지금으로 치면 아주 옛날분이신 아빠는 영정사진으로 저와 가족들, 슬픔을 함께할 가까운 분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은 아니지만, 좀처럼 잘 웃지 않으시던 분께서 여행 가셔서 찍었던 미소 띤 모습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셨습니다. 뭔가 할 말씀이 많아 보이셨지만 아무리 바라봐도 한 마디도 안 하셨어요...
이승에서의 아빠
유난히 인물이 출중하셨던 아빠는 엄마에게는 다정하고 성실한 남편이셨고, 할머님 할아버님께는 그야말로 장남 그 자체였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는 둘도 없는 집단의 기둥이셨고, 저와 제 동생에게는 한없이 세심하고 든든한 아버지셨습니다. 저마다 기억하는 부분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고 멋진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신 분이셨습니다.
저승에서의 아빠
아빠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지내실까요? 어떤 종교를 믿지 않는 저로서는 아내와 지낸 60년 가까운 세월과 부모님과 보낸 또 하나의 60년을 뒤로하고 지금은 어디에서 지내고 계실지 걱정이 됩니다. 아빠와의 이별을 글로 적고 있는 저의 옆에 계실지, 평소답지 않게 엄마께 힘없는 목소리로 "아빠 보고 싶어..."라는 말로 끊은 전화기 너머의 아들 곁에 계실지, 단 하루도 떨어진 적 없는 아빠의 우주였던 아내옆에 계실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의 아빠의 모습이 참 외로워 보이 셔서요.
찬란했던 모습을 기억하겠습니다
경상도 남자분답지 않게 아빠는 무척 상냥하시고 감정이 풍부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억하는 아빠는 다 큰 딸내미의 옷과 기타 모든 것을 함께 직접 골라주시고 넘치지 않게 조언해 주셨습니다. 살면서 단계단계마다 항상 가족회의로 어린 자식들과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셨고 엔카와 옛날 영화를 즐기시던 로맨티시스트셨습니다. 온 동네 아가씨들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의 미모로 집안의 기둥이셨던 그 모습을 많은 분들과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가슴에 묻은 아빠
아빠와 함께한 세월이 37년이었고, 시집와서 아빠 없이 지낸 세월이 20년입니다. 저의 찬란했던 시절에 아빠가 계셨고, 제가 가장 힘들 때도 제 곁에 계셨습니다. 아빠는 제 이상형이자 제 멘토였고, 좋은 스승이자 저를 가장 잘 아는 분이셨습니다. 3일장을 치르고 화장장을 거쳐 납골당에 이르기까지 죄송하고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던 시간을 마치고, 저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이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저는 기념일이나 날이 화장한 날, 비가 많이 오는 날, 보름달이 너무 예쁜 날에 아빠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죄송할 것이고, 제 아이들의 기특한 모습을 봐도 아빠가 생각날 것입니다. 좋아하시던 노래가 들리면 보고 싶을 것이고 아빠와 비슷한 연배의 할아버님을 뵈면 눈물이 날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고통이 없으셔서 안도가 되지만, 다시는 뵐 수 없음에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꿈에서 뵌다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빠, 아빠가 내 아빠여서 너무 힘이 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절 아껴주시고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랜 시간 외롭게 해 드려 죄송하고 부디 꿈에서나마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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