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여든을 훌쩍 넘으신 아빠이시지만, 환갑이 조금 지나셨을 때 어느 날 발가락이 많이 아프다고 하시면서 진통제를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러신가 보다 했는데, 그런 날이(진통제를 드신 날) 쌓여가도 아빠 발가락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은 잠을 한숨도 못 주무셔서 그냥 진통제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셔서 병원에 진료를 받게 되셨습니다.
아빠의 엄지발가락
그때의 저는 참 불효자식이었습니다. 당신께서 스스로 병원에 안 가셔도 저라도 여기저기에서 자문을 구하고 약국에라도 가서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며칠을 진통제에만 의존하시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었습니다. 그 고통은 스치는 바람에도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이라는데...
아빠의 눈물을 처음 보았습니다
저희 아빠는 1937년 생이셔서 옛날 분이시기도 했고, 집안이 무척 보수적이셔서 남자분이신 아빠가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는 것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신 아빠가 발가락의 통증이 낫질 않아서 밤새 우신 겁니다. 너무 뒤늦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인 '통풍'이란 진단을 내렸습니다. 한자의 뜻은 알겠는데, 아빠가 왜 그 병에 걸리신 걸까 했습니다.
극한의 고통을 주는 '통풍'
고통의 극한이라고 하면 대개는 산통을 예로 들으실 것인데, 아이 둘을 출산해 본 경험이 있는 제가 기억하는 출산의 고통은 많이 아프기는 하지만 칼로 베는 듯한 찌르는 고통은 아닙니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몸을 틀 때마다 전해지는 통증은 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겪으신 통풍의 고통은 식은땀을 종일 흘리시고 식사도 마다하시면 말씀도 없으시고, 급기야는 참고 참던 눈물이 절로 흐르게 되는 고통이셨습니다.
예전의 저의 아빠는
아빠는 소위 말술을 드셨습니다. 할아버님도 약주를 즐기셨고, 집안에 술을 못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중 아빠는 술을 드시는 횟수도 잦고 양도 많았습니다. 술의 종류도 별로 가리지 않으셨고,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분들과 일주일로 따지면 하루 이틀 정도만 쉬셨던 것 같습니다. 흡연도 오래 하셨죠. 그런데 어느 날 술을 못 이기게 되고, 기침도 잦으신 바람에 당신께서 금주와 금연을 동시에 하셨습니다. 통풍이 발병하기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놀라운 처방
아빠는 예전에 약국을 운영하신 적이 있으시기 때문에, 누구보다 질병이나 약에 대해 많이 아십니다. 하지만 어떤 진통제로도 효과가 없으니 더 견딜 수가 없어졌던 겁니다. 드디어 찾아간 병원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처방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단백질은 삼가시라는... 아니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있는 성분이 단백질인데 그걸 먹지 말라는 믿기 어려운 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셔서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실지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너무 많이 드셨던 진통제
다치지도 않으셨는데 극심한 고통을 느끼셨던 아빠는 진통제의 양을 늘리셨습니다. 하루 세 번 드셔야 할 진통제를 네 번, 다섯 번... 설마 용량을 늘리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많이 드셨던 진통제가 아빠의 신장 한쪽을 망가뜨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면, 진통제 과다 복용의 많은 부작용 중 하나가 신장 기능을 떨어뜨린 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도 신장 한쪽으로만 살고 계십니다.
지난날들을 후회하십니다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셔서 부모님과 누나 동생들, 집사람과 아이들까지 열식구의 생계를 책임지시고, 누나 동생들 시집 장가까지 모두 보내신 아빠의 평소 스트레스는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기분 좋아서 드신 술보다는 삶의 무게를 잠시 잊기 위해 드신 술이 훨씬 많으셨을 겁니다. 술로 잊어보려고 했던 그 시간들이 나중에 아빠께 감당할 수 없는 통풍이란 녀석으로 돌아올 줄 아셨다면 아마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셨을 겁니다.
혼자서 드시던 진통제는 아빠의 한쪽 신장을 못쓰게 만들었고, 단백질로 된 많은 음식을 못 드셨던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병원에서 처방한 통풍약으로 고통도 없으시고, 고기나 두부처럼 단백질이 많은 음식도 소량은 드십니다. 견디기 버거웠던 시간을 버티신 아빠께 자식으로서 해드린 것이 없어 죄송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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